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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가 그의 신작 장편 소설을 들어 보였다. /박성원 기자
최근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문학동네)을 펴낸 소설가 이기호(53)를 만났습니다. 제목부터 시선 집중. 아마 이기호 소설을 탐독해왔던 독자라면 “어, 이시봉?” 했을 겁니다. 이미 여러 차례 소설에 등장한 이름이거든요.
화제의 출판인, 출판사 무제 대표인 배우 박정민도 ‘시봉’에 천착해 추천사를 썼습니다. “전국의모바일게임
반려인들이여, 이 책을 절대 보지 마시오. 아니 보시오. 아니 보지 마시오. 아니. 몰라 시봉. 그냥 보시오!”라고요.
소설은 개 이시봉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작가의 반려견 이름도 이시봉. 여기저기 시봉이네요.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이기호 소설가와 이시봉 이야기를 잔뜩 했습니다. 그 대화의 기록을 구독자 분들과 나눕니기술적반등
다.
부디 이 시봉이 어떤 시봉인지, 이번 소설의 시봉인지, 현실의 시봉인지, 과거 소설의 시봉인지 맥락을 잘 따라와주시길 바라며….
황지윤 기자(이하 황): 짧은 소설은 꾸준히 내셨는데, 출판사에서는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라고 홍보를 하던데요(웃음). 그간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이기호 소설가(이하 주식미수거래
이): 늘 뭔가 쓰고 있었고, 책으로 묶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 소설도 사실 연재했던 작품이거든요. 연재를 중간까지만 하고, 연재료를 너무 많이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웃음) 중간에 중단했어요. 그 뒤에 써야 했는데, 제가 학교에서는 직업인으로서 선생님 역할(현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을 해야 했고,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세요. 간병도 해야 했고, 강아지시은스탁
랑 집에 앵무새가 두 마리 있어요. 루피와 에이스. 애들이 지은 이름인데요. 생활인으로서 삶도 계속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금방 갔고, 이렇게 세월이 흐른지도 몰랐어요. 엊그제 책을 낸 거 같은데, 11년 만이라고 하는 건 좀 그런 거 같은데? 하여튼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두 가지를 다 병행하면서 사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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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작업 기간은요?
이: 작업은 3년 정도 했고요, 구상까지 따지면 5년 좀 넘은 것 같아요. 3분의 2 지점까지는 금방 썼는데. 어느 지점에서 원래 구성을 밀고 나갈 것이냐 아니냐에 대해 주저하는 기간이 1년 넘게 있었어요. 제목에 ‘짧은’이라는 말이 들어가잖아요. 원래 구상에서는 (이시봉이) 죽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1년 넘게 못 쓰고, 정말 한 문장도 안 나가더라고요.
황: 이시봉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이: 아, 내가 이름을 잘못 줬구나. 우리 집 강아지가 이시봉인데, 얘를 이시봉으로 해놓고 죽게 만들지는 못 하겠구나. 이것 때문에 ‘짧은 게 꼭 그 짧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살리는 쪽으로 갔습니다.
황: 그럼 어떤 짧음인가요?
이: 나는, 강아지들이 15~20년 사는 게 너무 짧아.
황: 짧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책은 짧지 않습니다. (참고로 528쪽)
이: 구상 단계에서 여태까지 쓴 소설 중에서 분량을 가장 길게 써보자는 목표가 있었고, 한 인물도 허투루 놔두지 말자는 생각.
황: 허투루 놔두지 말자는 건?
이: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 허투루 대상화시키거나 도구화시키지 말자.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까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해주자는 목표가 있었고요. 사실 이것보다 더 길었어요. 몇백 페이지 더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황: 원래는 700쪽 넘었던 거예요?
이: 그랬겠죠. 제작에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좀 많이 줄여나가는 작업을 후반부에 했고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다음에 편집 선생님들하고 교정·교열하는 단계에서 더 잘라냈어요. 내 마음대로 더 길게 쓰고 싶었다는 욕망도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지난달 말 본지 인터뷰를 위해 조선일보사를 찾은 소설가 이기호. /박성원 기자
황: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을 말씀해주셨는데, 20대 초반 은둔 청년인 주인공 이시습과 그의 친구인 정용, 수아, 리다 등. 다 20대잖아요. 전작에 비해서 인물들의 나이가 어려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 시습의 나이를 그렇게 한 건 의도적이었어요. 시습을 그렇게 정하니까 친구들이 다 그렇게 됐죠. 시습은 ? 이게 소설의 핵심일 수도 있는데 ?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원인이 동일한 경우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20대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오직 그 여자친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거지, 그 여자친구를 둘러싼 어떤 원인과 이유 때문에 사랑한 것 같진 않거든요. 시습에게는 시봉이가 그런, 사랑의 대상과 원인이 명확하게 일치된 상태 같아요. 반면 소설에 나오는 박유정이나 정채민 등의 인물은 사랑의 대상과 원인이 좀 다른 상황이죠. 그 강아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요. 자신의 좌절된 욕망 때문에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시습이가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시봉을 만났고, 그런 일(교통사고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기 때문에 그 나이대로 갈 수밖에 없었죠. 저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데, 이 친구들이 시봉이랑 같이 쭉 살아왔는데, 얘네가 시봉이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가 시봉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은 시봉이를 시봉이 그 자체라서 사랑하는데, 저는… 제 스스로 비판하고 반성하는 지점 중 하나예요. 내가 이 녀석한테 내 시간과 돈, 노력, 애정을 이렇게 다 투자하고 있는데… 하면서.
황: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하실 때, 연재 계기를 봤는데요.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쓴다”고 하셨어요.
이: 내가 그렇게 썼어요? 와~ 나 이 소설 끝나고 내가 뭘 얘기하려고 했었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웃음). 아마 늘 그런 감정이 있었을 거예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면서 아, 난 얘를 사랑하는데. 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강아지란 존재가 그런 건데, 내가 얼마만큼 얘를 사랑할 수 있지? 내 사랑을 알아주지도 못하는 저 존재를….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거지! 설령 그 존재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 존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황: 근데, 왜 시봉이한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세요?
이: 일단 경쟁 상대들이 많잖아요. 우리 아이들 셋에 와이프까지. 근데 내가 시봉이를 늘 씻기고, 똥오줌 치우고, 산책도 전담하고….
황: 그런데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나도 너무 서운하고 어떨 때는 너무 비참해져요. 시봉이에게 1순위는 우리 와이프. 진짜 아무것도 안 해주는데. “시봉아~” 하고 부드럽게 불러주는 것뿐인데. 근데 또 지금은 섭섭해하지 않아요.
황: 그래서 연재 계기 쓰신 걸 보고, 이 소설은 이시봉에게 사랑받기 위해 쓴 것일까 했어요.
이: 강아지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랑의 왜곡된 모습도 보이고, 분열되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 모습들을 조금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강아지가 등장하는 것 아닐까. 그게 또 인간이 강아지를 이용하는 방식이 아닐까.
황: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것” 작가님의 사랑관인가요?
이: 모르겠어요(웃음). 고통받는 존재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게 우리의 사랑을 좀 더 힘 세게 만드는, 훈련시키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고통받는 존재가 자기와 거리가 먼 존재라 할 지라도, 그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으려는 노력. 사람도 훈련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황: 이시봉이란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는데요. 구체적인 이름을 호명하는 걸 좋아하시는데, 그 이유도 궁금해요.
이: 그래야 소설 쓸 때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여기 나와 있는 이시봉이라는 강아지는 제가 키우는 이시봉이란 강아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 이시봉이예요. 기본적으로 저는 이름 끝에 이응(ㅇ)자가 들어가는 애들한테 애정이 있어요. 이상하게 그래요. 첫 소설부터 이시봉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해가지고. 일종의 이시봉 유니버스 같은 건데, 이 존재들은 좀 비루하고 약한 존재의 통칭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황: 제가 보니까 백수, 불량배 이시봉이 있었고요. 너무 얄궂은 거 아닌가요? 이런 이름을 주신 것은….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전 작품에서의 업 때문에 지금 이시봉이 축생한 거잖아요.
이: 와하하. 아~ 거기까지 생각 못 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얘기해야겠다. 윤회의 업 때문이라고. 근데 너무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태어났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본지와 인터뷰 중인 이기호. /박성원 기자
황: 제목에는 이시봉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이시습이죠. 저희는 이시습의 눈으로만 이시봉을 보잖아요. 이시봉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그렇죠.
황: 어쩌면 정채민 대표(이시봉이 희귀한 비숑 프리제 종이라며 접근해오는 인물)랑 럭셔리하게 사는 걸 원할 수도 있고요.
이: 그 강아지를 사랑하고, 그 강아지를 대하는 인간을 보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다 인간이 만든 거야. 우리는 알 수 없어요. 현재 진행형의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그 강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최대한 하는 수밖에 없어요.
황: 소설의 이시봉도 이시습과 같이 지내길 원했던 걸까요?
이: 알 수 없어요. 나 이거 진짜 알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시습도 상처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황: ‘명랑한’이라는 수식이 붙어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명랑한 강아지라는 느낌은 못 받았던 거 같아요. 조용한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읽은 걸까요?
이: 아니,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 현실적인 어려움인데, 나는 소설에 의성어 쓰는 게 너무 싫어. 강아지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거를 천편일률적으로 막 “왈왈왈” “멍멍멍” 써야 하는데 이게 너무 싫은 거야. 그래서 묘사의 측면으로만 갈 수밖에 없으니 얘가 덜 명랑해 보일 수도 있었겠다.
황: 제목은 작가님이 직접 지은 제목인가요? 다른 소설도 보통 작가님이 제목을 정하나요?
이: 네, 대부분 그랬던 거 같은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편집부 선생님들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 중에 한 명이거든요. 정말요. 하라는 대로 다 해. 표지 마음에 안 들어도 아무 말도 못 해.
황: 그래서 좀 일관성이 있어요. 어떤 책은 제목만 봐도 “아, 이건 이기호 작가님 작품이겠구나” 하고요.
이: 아이, 참. 그래주시면 성공한 거죠.
황: 만약에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이시봉이라는 이름을 빼고 가자 한다면?
이: 들었을 거 같아요. 저보다 훨씬 전문가들이시잖아요. 책 내는 후반부 작업에 들어가면, 내 작품을 갖고 막 애를 쓰고 고생하는 걸 봐요. 그러면 저분들의 뜻에 맞춰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황: 소설의 이시봉이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라는 희귀종인데요.
이: (웃음) 저기 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스페인 음악을 듣다가 계속 뭐라고 하는데. 후에스카르, 후에스카르 하는 거 같아서 그렇게 적은 거고요. 사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와이프하고 신혼여행을 못 갔거든요.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스페인 여행을 갔어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 그림을 집중적으로 봤는데, 강아지가 그림에 있었어요. 우리가 시봉이를 막 키울 때였거든요. 그림 속에 강아지가 누가 봐도 비숑 아닌데, 비숑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비숑의 모습은 인간의 손길을 거쳐서 된 거거든요. ‘하이바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는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우리 시봉이도 미용 안 받고 대충 씻기고, 대충 말리면 절대 그 스타일이 되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왔듯, 분명 우리나라에 저 품종견을 데리고 올 때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거야’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내 안에서 이야기들이 결합됐는데, 그때 핵심 키워드가 사랑. 고야 그림과 내가 키우는 강아지.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어요.
황: 책에 초판 한정 이시봉 포토카드가 들어있어요. 3종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 나도 진짜 늙었나 봐. 출판사 선생님들이 얘기하길래 “그걸 왜 해요” 했는데, 하겠다니 어떡해, 말 들어야지. 복잡한 마음이 들긴 해요. 포토카드 나오는 거 보면서. 아, 얘는 소설에 나오는 시봉이랑은 다른 애인데. 얘가 이렇게 나오니까 모델이 돼서 나온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편집부 선생님들은 이게 독자한테는 감정 이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요.
소설가 이기호와 그가 가장 아낀다는 반려견 이시봉 사진./박성원 기자
황: 아까 사진 찍으면서 제가 들었던 이시봉 사진도 포토카드 3종에 포함된 사진인가요?
이: 아니에요. 그 사진은 제가 가장 아끼는 시봉이 사진이예요. 개인적으로 내가 시봉이 생각하면 약간… 그 ‘띨빡한’ 모습이 있거든요.
황: 이래서 시봉이가 작가님 안 좋아하는 거 아니예요?
이: 아니, 그 제가 말하는 ‘띨빡’이라는 거는, 정말 귀여움의 핵심이예요(웃음).
스토리텔러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안녕합니다.
조만간 새로운 문학 콘텐츠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THE END-
이야기(story)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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