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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건축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제공, 사진가 김중만 작품
우리가 보험사 전세자금대출 상고한 2심에서는 변호사님의 일이 아주 많아졌다. 2심 판사는 이 사건에도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강 변호사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매우 진지하게 사건을 대했고, 말대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증인을 부르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눈에 보였다.
김중업, 김수근 두 분 선배 건축 미국성적 가를 내 재판에 증인으로 부른 것도 이 판사였다.
우리는 2심에서 승소했으나 검찰이 무죄판결에 불복 상고해 이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가면서 변호사님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사회적 정의도 정의려니와, 나에 대한 애정 어린 배려도 또한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더구나 대법원의 합의체에서 하나의 판례를 신한마이카 금리 끌어낸다는 일은 건축사법 개정(개선)에 버금가는 일이라는 게 그분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사건의 중요성 때문이랄까,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 3천명의 회원을 동원해 보낸 공동명의의 탄원서가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대법원장에게 접수되기도 하는 등 싸움은 확전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님은 그럴수록 오히려 힘이 솟아나고 기가 우량저축은행 살아나는 듯했다. 수임료 한 푼 없는 사건을 가지고 이렇게 열중하는 것을 바라보기는 정말로 죄송한 일이었으나, 나로서는 그 수임료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어이, 김 소장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인가"라고 소리라도 지를, 그러고는 나를 다시 안 보겠다고만 할 것 같은 분위 대출에 필요한 서류 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결국 대법원에서도 이겼다.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함."
판결 주문의 끝에 대법관 세 사람의 서명날인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판결문을 받던 날, 나는 변호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변호사님께서도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얼마나 많이 종이 위에 옮겨 적었던지, 그동안 모아둔 재판관계 서류가 한 아름은 족히 됐다.
이것이 대부분 변호사님 자신이 직접 양면 괘지에 쓰고 타자 방에 가서 정서해온 것들이었으니 대단한 일을 끝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님은 여러 이야기를 안 하셨다.
그저 "야, 미스 신아. 이제 이 서류들을 모두 치워라"가 끝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변호사님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세상을 살다 보니 내가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이 엉뚱하게 나를 해치려 달려드는 적도 있었고, 정말로 악의를 갖고 죽이겠다고 쫓아다니기도 했다. 걸핏하면 면허증 없는 내 처지를 악용해 모든 것을 다 들어먹으려는 동업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찾아가는 나에게 변호사님은 진정으로 걱정을 해줬고, 걱정뿐만이 아니라, 법적 조치가 필요한 모든 일을 알아서 다 처리해 주셨다.
실제로 이분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정말 여러 번 난처할 지경에 빠졌을 것이고, 그것이 여러 번 거듭되면서 거의 거기서 헤어나지 못했으리라는 게 확실하다.
아마도 세상에 그런 변호사는 어디에도 다시 없을 것이 분명하고, 내가 그런 분을 아무 때나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세상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특권이자 특혜였다.
또, 만일 그 변호사 비용을 계산하기로 치자면 아마도 천문학적인 액수였을 것이므로 나는 경제적으로만 따져도 막대한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것은 이 험난한 세상에 이렇게 확실한 후원자를 가졌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사회정의라든가 하는 일들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살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그리고 매사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북돋웠다.
심지어는 당신이 연세가 많아져서 실무를 뛸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도, 나에게 몇 번 비슷한 일들이 생겼는데, 이세중 변호사를 거쳐, 천기흥 변호사를 소개해 주기까지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셨다.
강 변호사님은 나만을, 자기 아들에게 한번 잘 해줬다고 해서 그 갚음으로 나만을 그렇게 열심히 도와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잘은 모르되,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김재규 사건 때 그만둔 대법관들, 광주 때의 홍순남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같은 분들과도 자주 연락하며 교류가 있었고, 적어도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니, 정신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가끔 돈을 보내거나, 어떤 실질적인 일에도 공동의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이는 어디에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기자회견장에도, 얼굴도, 이름 석 자도, 다만 어디 공동으로 서명하는 데에는 당연히, 서슴없이, 서명을 하셨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디 연루돼 불려 다니는 게 겁나서 앞장서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 자신은 신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강 변호사님은 단 한 번 나에게 '부탁' 비슷한 걸 하신 일이 있다.
그것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변호사 시절 무슨 기금을 모은다고 안국동 어디에서 바자회를 했을 때였다. 강 변호사님은 나에게 거기를 함께 가자고 하셨다. 그러고는 그뿐이었다. 무얼 사 주자거나, 도와주라거나 하시지를 않았다.
그게, 그분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대한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 변호사님은 나에게도 어떤 의식화 교육을 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분은 나를 만날 때마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이야기하셨다. 흔해 빠진 시국 비평이 아니었다. 그냥 아는 체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런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지나간 우리네 옛 시절, 나 개인의 문제 말고도, 우리는 모두 얼마나 많은 암흑과 혼돈과 갈등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던가. 그때마다 나를 일깨워 준 것은 그분의 간략한 말속에 번득이는 통찰력이었다.
그리고 그분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은 고려대 홍일식 총장이 쓴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이었다.
어느 날 변호사님은 파주인가 어디에 자기 산소 자리를 보아 놓고 왔노라고 자랑하셨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실향민으로,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 묻히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남이 이야기하듯이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자신의 묘비명을 제목으로 한 인사말을 법보신문에 기고하고 그 기사를 오려서 나에게도 보내 주셨다.
그 글은 그분이 살아오는 동안 알고 지낸 모든 사람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였다. 그리고 얼마 후 나에게 전화하시기를 가톨릭에 관한 책이 읽을 만한 것 있으면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아마 내 기억에 김홍섭(1915∼1965·죄수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수인의 아버지', '사도법관' 등의 칭호를 얻은 법관) 판사의 '無常을 넘어서'와 A.J.클로닌의 '천국의 열쇠' 두 권의 책을 보내면서 이분이 이 책들을 정말 읽으실까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엄청난 실수요, 과오요, 건방지고 덜 떨어진 오산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로 그분은 이미 그때 성당을 몇 군데 섭렵하셨고, 상당히 마음속으로 가톨릭에 귀의하여 죽음을 맞이하려는 생각에 기울어 있었던 듯하다.
나는 나의 오만불손한 잘못된 판단으로 이분의 강인함과 고집으로 봐서 나 정도의 속물이 성당에 가시라고 해서 고분고분 들으실 분이 아니라고 지레짐작을, 못된 단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40을 훨씬 넘겼을 때 그 막내 따님-내가 그 애를 처음 봤을 때 기저귀를 찬 어린애였다-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침에 꼭 신문을 손수 가지러 나오시던 분이 그날따라 늦도록 안 일어나시더라는 것이란다.
깨우니까 겨우 일어나 칫솔을 들고 "이것이 무엇 하는 물건이냐"고 물으시더라는 것. 그러고는 그날 저녁 쓰러지셔서 그대로 다시 못 일어나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오랫동안-거의 40년 이상을- 그분을 나의 아버지같이 사랑하고 의지하고 때로는 그 고집스러움을 미워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됐다.
그분은 나에게는, 인생을 살면서 그냥 오다가다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11월 2일은 위령의 날이다. 이날은 천당과 지옥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나는 하루 종일 강봉제 변호사님을 생각했다. 그래서 옛날 강 변호사님의 비서로 오래 있었던 미스 신이 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그 어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당시에도 오십이 넘은 비서 미스 신으로부터 그분이 마지막 얼마 동안 여러 군데 성당의 미사에 가셨고, 가신 곳마다 신부의 강론을 주의 깊게 경청하시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분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의지하고, 기대하고, 무언으로 부탁한 일을 못 해 드렸다.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게 지금 몹시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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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더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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