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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까 등등. 만개한 영화의 정원에 숨어있던 비밀 우물 같은 영화, ‘여름정원’에 찾으시는 답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영화 '여름정원'/에이유앤씨
‘여름정원’ 포스터의 세 아이, ‘안경잡이’ 카와베, ‘스모 선수’ 야마종합주가지수차트
시타, ‘말라깽이’ 키야마가 주인공 삼총사입니다. 안경잡이, 스모 선수, 말라깽이는 셋의 별명이에요. 청신한 아침 같은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영화의 시작은 죽음부터 언급합니다. “야마시타네 할머니 돌아가셨대”라고 알려주거든요. 사흘 만에 등교한 야마시타는 장례식이 어땠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시신을 화장하는데 2시간 걸린다”며 뼛가루 만드는 과정까지 알려줍니초보자주식
다. 아이들의 대화는 골목에 혼자 산다는 할아버지로 이어지고 “할아버지가 혼자 죽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자”는 제안이 나와요. 또래보다 조숙한 안경잡이 카와베도 거듭니다. “난 요즘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계속 하게 돼. 죽음이란 걸 믿을 수 없어. 믿지도 못하는데 계속 생각나니까 찝찝해서 죽을 것 같아.” 할아버지 죽음을 함께 지켜보기로 의기투합하는 인터넷백경
삼총사. 집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엿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죽기는커녕 아무렇지 않게 외출도 합니다. 어떤 날은 마트에 가고 다른 날은 병원에도 가는데 삼총사의 철없는 미행을 알면서도 내버려두고요.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셋 다 들어오라”고 하더니 “마당에 잡초가 무성해서 모기가 제 집인줄 알고 날아다닌다, 창문을 열 수가 없다옥토랩
”고 합니다. 고단수 할아버지의 은근슬쩍 부려먹기에 넘어간 세 아이. 영차영차 잡초 뽑기에 어찌나 열심인지 보다보면 웃음이 나실 거에요. 이 사실이 이웃에 소문 나자 이웃집 여학생들이 “너네, 혼자 사는 할아버지 도와준다며?” 찬사와 함께 선물도 갖다줍니다. 신이 난 삼총사의 으랏차차에 할아버지네 마당이 말끔해지는 건 시간문제죠.
영화 '여름정원'/에이유앤씨
마당이 생긴 할아버지네는 완전히 다른 세상. 유채꽃, 분꽃, 얼레지, 황매화, 초롱꽃, 기린초…. 심어보자는 꽃이 늘어만 갑니다. 할아버지는 셋에게 수박을 잘라주고 물장난치는 법도 알려주다 어느새 친구가 돼요. (그래서 영문판 제목이 ‘The Friends’) 할아버지는 세 아이에게 오랜 비밀을 고백해요. 왜 혼자 사는지, 어쩌다 그럴수밖에 없게 됐는지. 이후 영화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게 된 여름날의 정원이 뜻밖의 만남과 이별을 통과하면서 생명이 불러온 죽음, 죽음이 알려준 생명의 의미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이야기 중에 우물이 나오면 눈여겨보세요. 거기가 통로거든요. 무엇의 통로인지는 직접 보시고 확인을.
‘여름정원’을 보고 있자니 저도 할아버지네 마루에 앉아 삼총사와 수박을 나눠 먹고 싶어졌답니다. 쨍한 녹음(綠陰)의 기운에 절로 청량해지는 기분. ‘이사’가 영화제에서 선호할 작품이라고 한다면, ‘여름정원’은 좀 더 편하고 친숙한 영화입니다. 아이가 주인공이면 흔히 성장영화라고들 하는데, ‘이사’나 ‘여름정원’을 성장영화로 한정하기엔 오히려 어른을 비추는 거울로 보였어요. 나오는 건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를 통해 어른인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문처럼.
뒷부분을 압축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할아버지 과거사가 드러나는 것까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윤곽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다 면면이 너무 전형적이라 전체 흐름을 방해하더군요. 암시하듯 툭 치고 지나갔으면 어땠을지. 정원의 우물을 통해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이어지는 연출은 익숙한 듯 분명해서 무리 없는 선택으로 보였어요. 거기서 날아오르는 그것들(!)의 존재도요.
아마도 안경잡이 카와베는 소마이 감독이 꽤 공력을 들인 캐릭터일 것 같습니다. 어딘가 안쓰럽게 조숙하거든요. ‘이사’에서 렌이 엄마 아빠의 이혼 때문에 또래보다 빨리 어른이 되길 원했듯, 카와베는 이해할 수 없던 아빠의 행보 때문에 너무 빨리 세상을 알아야 했으니까요. 조숙한 아이와 그 아이를 둘러싼 세계가 조응하는 방식은 소마이 감독이 평소 눈여겨보던 지점인 것 같네요.
일본 배우 미쿠니 렌타로. 영화 '아내'(1953, 왼쪽)와 '여름정원'(1994)의 출연 때의 모습.
‘여름정원’의 할아버지 미쿠니 렌타로(1923~2013)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사진을 찾아서 나란히 붙여봤습니다. 위의 사진 보시면, 왼쪽이 미쿠니 렌타로가 서른살이던 1953년에 영화 ‘아내’(감독 나루세 미키오)에 나온 모습이고, 오른쪽이 일흔에 찍은 ‘여름정원’의 모습이에요. 두 사진 사이 흐른 세월이 반백년이네요. 미쿠니 렌타로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감독이기도 합니다. 1987년 제40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신란 하얀 길’로 수상했습니다. 본인이 각본까지 직접 썼다고 하니, 여러 면에서 남달랐던 분이었나봅니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 2가지 붙일게요. 위가 ‘여름정원’ 예고편, 아래가 ‘여름정원’ 엔딩에 나오는 노래, ZARD의 ‘소년’(Boy) 입니다. 슬램덩크 좋아하시면 ZARD 목소리 익숙하시죠. 새삼스럽지만 음색이 참 여름이네요. 아, 여름 같은 영화가 개봉작 중에 또 있어요. 시원한 극장에서 여름을 보내기에 좋은 영화, 다음에 더 말씀드려볼게요. 그럼, 전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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